2013년 8월 30일 금요일

Don't cry because it's over

언젠가 막내 딸아이에게 너가 제일 좋아하는 말(Quote)이 뭐냐고 물어보니까(내심 성경말씀을 기대하며...) 딸아이가 선뜻 대답하는 말이

"Don't cry
 because it's over,
 Smile
 because it happened."  이였습니다.

"울지마세요 다 끝난 일이니까
 웃어버리세요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갑자기 딸아이가 다 큰 것 같더라구요...


2013년 8월 28일 수요일

야채볶음밥

   기숙사에 가있는 대학 2학년 우리 둘째 딸아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든 야채 볶음밥이라고 사진 찍어 보냈습니다. 별것도 아닌 거 갖고 딸네미가 보낸 사진이라고 좋아서 블러그에까지 올리는 제가 왠지 나이가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가지,버섯, 계란, 피망, 시금치, 간장 넣고 만들었다는데 맛있어 보이네요. 공부하랴, 아르바이트하랴 열심히 사는 우리 딸 방학 맞아서 집에 있다가 기숙사에 보내는게 시집보내는 느낌입니다. 



새벽만나 8월28일 본문 왕하 4-5

오늘 은혜받은 말씀

4: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남편을 잃고 빚으로 인해 두 아들마저 뺏기게 된 과부가 갖고 있던 기름 한 병을 갖고 엘리사는 과부에게 그릇을 준비하라 하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기적을 베푸나 준비된 그릇이 없자 기름도 그치게 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내가 준비한 빈 그릇에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채우는 분이시다. 내개 필요한 재정도 은혜도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믿고 나의 생각과 염려를 다 비우고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내가 빈 마음으로 나아가는 한 하나님의 채움에는 끝이 없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채움을 경험하는 길은 끊임없이 나의 내면을 비우는 길이다.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달라는 아람왕의 친서를 받아든 이스라엘 왕은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없는 문둥병을 빌미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아람왕의 계략으로 생각하여 두려워 낙심하게된다. 그 때에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한다. 한 나라의 왕도 겁을 내는 두려움의 상황에서 당당히 그 위기를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해결하신다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은 얼마나 멋있는가.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을(문제를) 내게 갖고 오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 하나님의 인도는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나의 필요와 다르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기도의 응답은 얼마나 많았던가?  

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같은 사건을 해석하는 시각의 차이가 나아만을 살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긍정적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축복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5:18-19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그에게만 제사를 드리겠노라고 엘리사에게 고백을 하지만 오직 한가지 아람왕의 군대장관으로 왕이하는 우상제사에 신하로서 보필하며 절을 행하여야만 하는 일에 관해서는 이해하고 용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죄인줄을 몰랐던 나아만은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는 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연약함의 한계를 보이는 나아만의 간구를 엘리사는 나무라지 아니하고 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믿음의 정도와 연약함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동일한 기준으로 각 사람을 대하시는 게 아니고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이런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언젠가 나의 믿음이 자라난다면 지금은 연약하여 감당 못하는 일들을 믿음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 지금 현재 내가 겪는 시험과 시련이 클 수록 하나님은 나의 믿음도 그것을 감당 할만큼 크게 여기시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감당할 수가 없다면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지닌채 나아가자.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새벽만나 8월27일 본문 왕하 1-3

오늘 은혜받은 말씀
3: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

모압과의 전쟁을 위해 연합군을 결성한 이스라엘과 유다 왕 여호사밧 그리고 에동왕은 모압으로 진행하나 칠일이 지나 모든 마실 물이 떨어져 버리는 위기를 만난다. 이스라엘과 에돔왕이 낙망할 때에 여호사밧의 권유로 엘리사를 부르게되지만 엘리사는 그들에게 왕들이 섬기는 우상에게나 알아보라고 말하며 관여를 안하려 하지만 오직 유다왕 여호사밧으로 인하여 엘리사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신다. 여호사밧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화평을 꾀하는 정책을 편 왕이지만 그 부친 아사의 뒤를 이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었다. 그것을 아는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오직 여호사밧 때문에 그들의 위기를 면케해주셨던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하는 어떤 공동체 속에서 같이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은 그 가운데 믿는 자를 보시고 그 환난을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당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 하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3: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환경과 모든 조건, 상식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본다. 그 기적은 회복이 필요한 모든 것을 충만히 채우시는 기적이었다.  그 시대 기적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기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자.   

새벽만나 8월25일 본문 왕상 20-22

오늘 은혜받은 말씀
21:27-29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살던 나봇은 이세벨의 계략과 그것을 묵인한 아합에 의해 모함을 받아 돌로 맞아 죽게되고 아합은 결국 그런 죄악된 방법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행위로 인해 하나님은 격동하신다.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저주를 들은 아합은 진심으로 겸손히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은 재앙을 아합 자신의 시대가 아닌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기로 한다. 아합과 같이 하나님보시기에 철저히 죄악을 행하였던 자도 한순간 말씀앞에 회개함으로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는 조그만 일에도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나와 같은 범인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그 깊이를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합이 설령 한 순간 겸손히 회개하며 엎드렸다 할지라도 그 죄에 대한 징계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겸손히 회개한자는 징계가운데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비단 아합에게만 베푸셨던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 지금도 수없이 죄를 범하는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일 것이다. 세상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하나님앞에 겸비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은 징계 속에 있는 사랑으로 인햐여 그가 받을 고난의 세월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참회개하는 자만이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22:7-8 여호사밧이 가로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 칭찬의 말, 자기 의견에 찬성하는 말하는 자를 누구나 좋아하지만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자의 말을 설령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말을 하는 자를 미워하지는 말아야 한다. 만약 지도자곁에 아무 말도 안하는 방관자,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깊은 생각 없이 그저 쉽게 동조하는 자들만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사실 앞길이 캄캄한 것이다. 본문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아합은 아람을 공격하기 전 여호사밧의 요구를 듣고 미가야를 제외한 400명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불러 모아 전쟁의 여부를 묻고자한다. 그들은 언제나 왕이 물어볼 때 언제나 왕의 계획에 지지와 좋은 소식만을 예언했던 자들이었지만 미가야는 왕에게 언제나 부정적으로 들리는 말만 하는 선지자였기에 왕은 그를 미워하였고 그를 제외시킨 것이었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 사사건건 나와 다른 면을 말하는 자가 나한테 결코 편할리는 없다. 그러나 그를 배척하지 말자. 그런 사람이 오히려 나를, 아니 내가 속한 공동체를 정말 사랑하는 자 일 수 있다. 사랑이 있기에 관심도 있고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이다. 정말 싫어지면 사람은 그 곳을 떠나게 되있다.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으면서 나와 다른 말을 하는 자, 특별히 자기 감정이 아닌 말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어찌 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붙여준 사람일 수 있다. 아합에게 있어 미가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못난 자아 때문에 부족한 역량 때문에 귀한 사람을 밀어내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열왕기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 하느냐로 인해 국가와 개인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음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 미가야 같은 충성된 하나님의 종이 있다 할지라도 지도자 한 사람이 그 말씀에 분별력이 없어 순종하지 못하면 결국 개인과 국가는 쇠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 하신 것이며 지도자는 그만큼 하나님앞에 겸손히 서있어야 할 것이다.


22:14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400명의 선지자, 또 자기 앞에 있는 왕들과 신하들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아는 미가야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들이 듣기 원하는 승리의 예언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패전과 왕의 죽음에 관한 예언이다. 믿음은 선택이다. 믿음은 넓고 쉬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을 가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라해서 따르는 게 아니고 한사람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을 따르는 것이다. 상황을 보고 편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옳은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분별하는 지혜야 말로 얼마나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주님 내게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그것을 실천할 용기를 주옵소서.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새벽만나 8월24일 본문 왕상 19

오늘 은혜받은 말씀

19: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하는 여호와를 체험하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죽이던 엘리야의 믿음과 용맹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 후 엘리야는 그를 죽이고자 하는 이세벨의 계획을 알고 자신이 처한 형편을 보았을 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살기 위해 광야로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갈멜산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과 엘리야가 홀로 대결할 때에도 자신의 생명을 생각했다면 그런 대담한 행동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처해진 상황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와 나약한 패배자를 결정짓는 것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자.

19:7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의 큰 능력을 경험 한 후 믿음을 잃고 침체된 엘리야를 먼저 천사가 와서 어루만지며 떡과 물을 주어 먹였지만 회복지 못한 엘리야를  다시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는 처음과 같이 어루만지며 온유하게 위로와 격려를 하여 주신다.
사역을 하다가 믿음을 잃고 지친자에게 책망은 먼저 할 일이 아니다. 그를 진정 어루만지며 세워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19:21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엘리사에게 있어 소 12겨리는 큰 재산이고 밭가는 일은 그의 가장 익숙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를 통해 부름을 받은 엘리사는 엘리야를 그냥 좇는게 아니라 자신이 몰던 소의 도구를 불살라 소를 잡아 백성을 먹게 하고 떠난다. 하나님의 소명은 인생의 그 어떤 현실보다 더 높은 것이다. 소를 잡는 것 같이 미련없이 나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더 높은 소명, 부르심앞에 순종하여 떠나기 전  이웃에게 음식을 베푸는 선한 마음, 그렇다 사명은 언제나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참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되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역이 언제까지나 교회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아닐 것이다. 교회안에서 성도들이 부르심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가 되어 교회 밖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푸는 사역으로 이어질 때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3년 8월 23일 금요일

새벽만나 8월23일 본문 왕상 18

오늘 은혜받은 말씀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아합왕이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으자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를 택하라고 말하지만 반응이 없다. 지금도 내 삶가운데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두 사이에서 나 또한 머뭇거리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엘리야의 외침에 침묵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내속에서 나를 향해 외치는 성령님의 소리에 아무 대답도 안하며 생각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믿음은 내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소리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이다.  

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의 기도에 바로 응답하사 갈멜산 제단위에 불을 내려 제물과 단의 물까지도 태우는 광경을 보고서야 백성들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라고 바울이 말한 것 처럼 내 삶속에서 하나님을 얘기하고 성경의 말씀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제물이 되어야하는 나자신을 태우는 능력이 내 삶에 안나타난다면 나의 말하는 모든 말들은 결국 바알 선지자들의 헛된 외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의 간구와 기도와 함께 내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여전히 나는 갈멜산 단위에 타지않고 그대로 있는 제물과 같이 그 누구도 나를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말씀을 갖고  어찌 내가 남을 변화 시킬 수가 있겠는가?  결국 나의 문제다.  진정 내 속에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고 진정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먼저 있어야하는 것이다.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새벽만나 8월22일 본문 왕상 17

오늘 은혜받은 말씀

17: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통안의 한줌 가루와 병속의 기름 조금으로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제 굶어 죽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는 먼저 자신을 위해 그것을 드리라고 말하며 그리하면 그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가뭄이 끝날때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을 하고있다. 믿기 힘들고 순종하기 힘든 상황에서 순종의 한계는 자기의 마지막 것을 드리기까지이다. 주님도 마6:33절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아직 넉넉할 때뿐만 아니라 목숨을 위해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을 때에도 그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이 일관성이 있다. 그러기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이다.  “…해라, 그리하면 …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인 것 같으면서도 결코 그렇지않은 것은 나의 선택과 의지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새벽만나 8월21일 본문 왕상 14-16

오늘 은혜받은 말씀

14:12-13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찌라 온 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하나님을 배역하는 여로보암이었지만 그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별 수 없이 아내를 시켜 선지자를 찾아가게 한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부인에게 그 아들만이 죽어 다윗의 묘실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여로보암 집안에게 저주를 내리셔서 여로보암에게 속한 모든 자가 길에서 죽어 들개와 새의 밥이 된다는 재앙을 내리지만 여호와를 향한 믿음으로 살았던 그 아들 아비야만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무덤에 묻히는 복된 죽음을 주신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성도의 안타까운 죽음마저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섭리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14: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여로보암의 죄악으로 함께 범죄한 이스라엘 전체는 버림을 받게 된다타인을 실족케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한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인하여 내가 지은 죄악이라 할찌라도 그 책임은 결국 나 자신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5:11-13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유다의 왕이 된 아사는 믿음으로 개혁을 실시한다. 개혁의 의지가 단호하다.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던 자신의 어머니마저 폐위를 시킨다. 지도자가 먼저  말로만이 아닌 철저한 본을 보이는 것이다. 요즘 말로 개혁에 친인척과 성역이 없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먼저 믿음으로 개혁할 부분이 있다면 적당히가 아닌 철저한 본을 보일때 자녀에게 또 교회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우선순위

베들레엠 철강회사의 사장으로 있던 촬스 스왑이라는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날 그가 경영 전문가 아이비리에게 이런 부탁을 한일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같은 시일 내에 더 많은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 해 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나는 당신에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로 보상을 해 드리곘습니다아이비리는 찰스 스왑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사장님께서 내일 해야 할 일을 적으십시오그런 다음 중요한 순서대로 앞뒤를 정리하십시오그리고 내일 사장님께서 해야 하실일은 이종이 위에 적혀있는 것을 실천하시는 것입니다첫 번째 일을 시작 하셔서 완전히 끝맺은 다음 다음번 일을 하십시요그리고 다음에는 두 번째 과제를 시작하고 끝날 때 까지 다른일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요그런 방법으로 일을 순서대로 처리 하십시요만일 당신이 계획표에 적힌대로 일을 모두 끝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하여튼 그러한 방법으로 매사를 처리해 나가면 사장님은 중대한 일을 끝내고 나중에는 사소한 일들 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같이 내가 지시한 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사장님께서 하셔야 할 일들의 중요성을 먼저 판단해 보시고 우선 순번을 정한 뒤에 행동 계획을 세우시고 그리고 사장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충실하게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매일같이 그렇게 꾸준히 계속하셔야 합니다이 방법을 실천해보시고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면 사장님의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도 이 방법을 시도 해 보도록 권장해 보십시요그후에 사장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나의 아이디어에 대한 대가가 헛되지 않은 것이라 느끼시면 저에게 수표를 보내 주십시오. " 스왑 사장은 그대로 했습니다그로부터 수주일 후에 스왑 사장은 말하기를 자기가 기업가로 활동하는 동안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유용하고 효력있었던 교훈은 바로 이 아이비리가 가르쳐준 그 아이디어였다고 말하였습니다그리고 아이비리에게 2 5천달러 수표를 보내 주었습니다.

수많은 성공학과 자기개발 서적들이 무수히 많은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성공의 법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성공하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실천해라. 
원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라. 
그것을 반복해서 꾸준히 실천하면 언젠가 당신은 성공을 성취할 수있다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죠. 
너무 쉽고 단순하며 명확하지 않습니까?

강철왕 카네기의 후계자

어제 저녁 두달만에  라파선교회 8월 월례회 모임에 갔었다. 월례회 예배 중 김 목사님이 설교 가운데 강철왕 카네기의 후계자에 관한 예화를 들려준 내용이 가슴에 와닿아 메모를했다가 인터넷을 서치해서 올려 보았다.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후계자를 지명하게 되었을 때 전 세계의 눈이 그 쪽으로 쏠렸습니다. 회사의 중역들 중에 탁월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누가 후계자가 될 지 모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카네기는 ‘쉬브’라는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했는데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쉬브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쉬브는 원래 정원 청소부로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원 청소뿐 아니라 공장까지 깨끗이 청소를 했습니다. 그의 성실과 근면은 그를 청소부에서 정식 직원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승진하였고 마침내는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되었습니다.

카네기의 비서가 된 쉬브는 손에 항상 메모지와 펜을 들고 카네기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 적고 철저히 실행하였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밤늦게 사무실에 있다가 퇴근하려고 나와 보니 쉬브는 그 때까지 비서실에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저는 사장님의 비서입니다. 사장님께서 일을 하고있는 동안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뒤 쉬브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그는 후에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카네기의 후계자로 선발하겠다고 하자 쉬브는 자신은 베우지 못한 사람이니 자기보다 유능한 사람을 뽑으라며 사양을 하였지만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의 회장은 학벌이 필요한 자리가 아닐세 자네는 미국에서 가장 현금이 많은 회사의 회장으로서 학벌좋은 유능한 사람을 채용하여 일을 시키면 되는 걸세. 자네가 갖고있는 성실과 충성된 부지런함이야말로 회장에게 있어야 할 가장 필요한 자격인걸세."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ability)을 보시지 않고 우리의 충성된 마음속에서 가능성availableness)을 보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 25:21).

새벽만나 8월20일 본문 왕상 12-13

오늘 은혜받은 말씀


12: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네들의 과중한 짐을 덜어달라고 요구하는 소리를 듣고 솔로몬을 모셨던 원로들을 불러 자문을 구하는데 그 원로들은 왕이 백성의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면 백성은 왕을 끝까지 따를 것이라는 지혜로운 충고를 하지만 결국 거절하고 만다. 섬김을 받으려하는 자는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공한 리더는 겸손히 섬기는 사람인 것이다. 섬김은 종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고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종이 주인을 높게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보다 자기 백성,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더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리더에게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진정 따르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참된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리더로부터 존중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행동하는 사람이며 그것이 끝까지 충성된 사람을 자기곁에 둘 수있는 비결일 것이다.

12: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백성의 요구와 원로들의 조언을 듣지 아니하고 포악한 정치를 하는 르호보암의 행위는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잃고 유다왕국 분열의 계기가 되어진다. 어떤 단체나 국가, 교회의 분열도 따져보면 지도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좋든 싫든 얻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만은 내 주위의 사람을 떠나게하는 패망의 선봉인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의 교만한 행동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한 섭리가운데 벌어지는 일이라는 성경의 말씀이다. 난 솔직히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의 절대적인 권위앞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한 뜻이기를 기도하며 삼가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나아가 내가 이해 할 수없고 때로는 분노마저 느끼게하는 어떤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과 황당한 사건을 만나게 될 때에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안에 일어났던 분노와 미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받아들이기 힘든 그러한 상황을 연출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면 내가 더이상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12: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여로보암의 공격에 맞서 르호보암은 온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모아 여로보암과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스마야에게 하나님은 르호보암에게 형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을 듣고 전쟁을 포기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자칫 형제간의 큰 살육이 날뻔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그의 뜻을 선포하게 하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구속함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요 제사장이 된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다 온전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믿음과 성숙함에 개인의 차이가 많이 있는가? 딤후3:16-17절의 말씀과 같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지혜를 주신다. 그 지혜는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부족한 나를 더욱 온전케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여로보암이 그가 자기 맘대로 세운 단에서 분향할 때에 그런 여로보암의 악행으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의 예표를 선포하기 위해 올라간 하나님의 사람(선지자)의 말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위에 쏟아 지자 화가 난 여로보암이 선자자를 잡으라고 소리치며 손을 내밀자 여로보암의 손은 그대로 말라 굳어져 버렸다. 그러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기를 고쳐달라고 사정을 한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던 자가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에게 자기의 문제를 해결 해 주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그 능력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하나님을 믿는 나의 삶을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삶을 살음으로 저들이 해결 못하는 문제를 만났을 때 나를 불러 기도를 부탁하는 그런 삶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 것이다.

13: 20-22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순종하여 여로보암 왕앞에 목숨을 걸고 축복이아닌 저주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손이 마른 왕의 손도 기도함으로 고쳐줌으로서 엄청난 재물로 환대하고자 하는 왕의 후의마저 거절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물 한모금 조차 얻어 먹지 않겠다고 하고 돌아가는 그런 충성되고 강직한 믿음의 선지자를 어찌하여 나이가 먹은 늙은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 운운하며 속임수를 써서 결국 그로 하여금 떡과 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만들고 그 일로 하나님은 그 늙은 선지자를 통하여 그 충성된 선지자가 죽을 것을 예언하며 노상에서 그대로 죽게 한 사건이다. 이전에도 이 부분은 정말 이해가 잘 안되는 대목이었다. 오늘은 읽으며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은 오늘 두가지 새로운 깨달음을 내게 주셨다. 첫째는 사람의 신분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고 네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가를 생각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하신 잠언의 말씀처럼 지혜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늙은 선지자가 자기도 같은 선지자라 하며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다는 말에 충성된 선지자는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바꾸어 다시 말씀하지 않았는데도 선지자라는 신분에 그의 말을 덮석 믿어 버리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실수라 생각이 되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 처절한 것이었다. 요즘 부끄럽지만 목사나 장로, 교회 성도의 신분을 이용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너무 많지만 그것이 설령 좋은 마음의 위로와 충고라 할지라도 내게 주신 말씀이 있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앞에 순종은 적당한 순종이 아닌 철저한 순종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만하면  되었지가 아니다. 어찌보면 도가 지나친 것 같이 보일지라도 철저한 순종을 원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며 편리함 때문에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끝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도들의 연약함에 맞추어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고 칭찬해 줄지언정 힘들어도 거기서 더 해야 된다고 말하는 지도자를 보기 힘든 세상아닌가? 그렇게 말하려면 자신 또한 그런 충성된 자가 되야하겠지만 자신도 그렇게 못하기에 그런 말을 당당히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순종하는 자에게 우리는 연약하기에 그런 당신을 나는 이해 할 수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거기서 만족하고 머물면 안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도 중심을 보시기에 이해 하실거라며 성도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머물게하는 착각을 갖도록 만드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 결과는 충성된 자를 죽이는 결과를 야기한 늙은 선지자와 다를 바가 없지 아니한가? 말씀 가운 데 지혜롭게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새벽만나 8월19일 본문 왕상 8-11

오늘 은혜받은 말씀


9:7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순종을 전제로 한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드린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전을 기뻐 받으신 하나님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쳐진 성전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축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세상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하나님한테 화려한 성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성전을 드리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설령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보장된 언약이었다.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새벽만나 8월16일 본문 왕상 4-7

오늘 은혜받은 말씀

6:7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얼마나 정확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했는 지를 알 수가 있다오늘 이 말씀을 읽으며 이번 여름 단기선교를 준비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났다. 예정했던 것에서 거의 큰 오차 없이 진행됬던 선교였다. 하나님의 사역을 정성을 다해 준비한다면 이미 그 과정에서부터 준비하는 자는 은혜를 받을 수밖에 없다.

7:21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솔로몬의 성전을 받치고 있는 크고 빛나는 두 기둥이 있었다.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계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사람이 노력은 하였으나 그 것을 세우시고 지키시는 자는 하나님인 것이다. 성전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교회, 나의 가정을 세우는데도 기둥은 필요하다. 나는 그 것을 말씀과 기도의 기둥으로 적용을 해보고 싶다. 말씀을 읽고, 기도도 내가 하지만 그것을 통해 가정과 교회를 세우시고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새벽만나 8월15일 본문 왕상 1-3

오늘 은혜받은 말씀

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아도니야의 반역에 함께 동참하였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결국 솔로몬에 의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다윗왕 때 했던 선한 일로 인해 죽음은 면하고 제사장 직분만 파면을 당한다. 성경은 이러한 일들은 여호와께서 엘리의 집안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히멜렉과 제사장 85명과 그의 온 집안이 사울의 부하 도엑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도 어찌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엄위앞에 인간은 두려워질 수 밖에 없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한 일에 쓰시고저 하는 뜻이 되기를 소원한다일단 하나님의 뜻이 정하여지면 사람의 눈에는 우연이요, 단순히 어떤 사건의 결과로 인해 빚어진 결과로 보여지는 일들도 알고보면 우연이 아닌 것이다. 세상의 역사와 개인의 일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선한 자는 선한 일에 악한 자는 악한 일에 쓰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상황이 만들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실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만큼 절대적인것이기에 우리는 선한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며 순종하여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계시록의 말씀들을 생각하며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언젠가는 그것이 응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에 확신을 갖고 살수가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세상 역사의 미래를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확실한 최종 목적지를 알고 걸어가기에 믿는 자의 일생에 절대 절망은 없는 것이다.  

새벽만나 8월14일 본문 롬15-16

오늘 은혜받은 말씀

15:5-7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예수님이 우리를 받으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한 마음 과 한 뜻이 결코 아니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으심으로 그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하시다. 하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인내하며 위로하며 사람을 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서로가 그런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만이 우리는 한 마음과 한 목소리를 낼 수가 있고 우리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15:26-27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미국 선교사에 의해 복음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 중의 하나인 나를 포함하여 지금 믿는 자들은 미국을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여야 할 신령한 빚진자의 의무가 있으며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육신의 것을 가지고도 섬겨야 할 의무가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회가 작은 일일지라도 미국 내 전도와 구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 행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참으로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새벽만나 8월13일 본문 롬12-14

오늘 은혜받은 말씀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경은 먼저 3단계의 과정이 있음을 말하고있다. 첫째는 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가지 말아야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대의 풍조를 바라봄으로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가 있다셋째 채워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며 그 마음을 따라갈 때 나의 삶은 말씀안에서 변화가 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이다.

12:10-1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형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되 서로 먼저하라고 말씀하신다. 저 사람이 먼저 사랑으로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스스로 체념하고 나 자신 사랑마저도 식어지는 적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먼저 손 내미는 자가 진정 사랑을 실천하는 자 일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교회에서 서로가 먼저 그럴 수만 있다면 교회는 정말 천국이 될 것이다. 또한 교회를 섬기며 천성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게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 열심을 품으라고 말하고있다. 성실하되 열심을 품는 것과 열심이 없는 것은 큰 차이가있다.열심없는 부지런한 섬김이 내게 맡겨진 일만 차질없이 함으로서 사람에게 감동과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열심있는 섬김은 내게 맡겨진 그 이상을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함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14:22-23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똑같은 행위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판단하시는 것이다많이 맡긴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 하시는 것이다. 나보다 연약한 자와 비교하며 나의 영적 안일함에 스스로 위안하며 면죄부를 주지 마라. 믿음의 행위를 하였다해도 하나님은 나의 동기와 마음을 감찰하시는 것이다. 나의 믿음은 예수님의 분량까지 자라가야 하겠지만 현재 나의 믿음의 수준에 비추어 책망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도 나를 책망하지 않으며 연약하고 작은 믿음이라도 그 것에 순종한 나를 오히려 복되도다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내 믿음의 크기만큼 되며 내가 감당할 만큼만 시험을 주시는 것이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새벽만나 8월12일 본문 롬9-11

오늘 은혜받은 말씀

9:10-12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야곱과 에서는 리브가에게 잉태될 때 이미 저들을 불러서 사용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능력과 권위는 온 세상 만물위에 있다.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정하여지면 모든 것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진다. 그러기에 정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부르심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것인가! 거기에는 응답이 있다. 하나님의 기쁨이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눈을 들어 주위 뜻을 알게 하시고 나의 발을 인도하사 형통의 길을 가게 하소서.


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선교와 전도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그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나로 하여금 전도와 선교를 하게 하신 자가 하나님 인것을 잊지말자.

11:17-20 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전도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이 나의 자랑이 되지 말아야 될 것은 전도를 한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순종한 것 뿐이요, 또한 전도받은 자가 구원받고 자라나면 그것은 내가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며 내가 전도를 할 수 있는 것도 내게 믿음과 순종을 하나님이 내게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가지들이 꺽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함이라말하고 있다. 불신자가 있는 이유는 나로 전도하게 하기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됨은 물론, 오히려 먼저 믿고 진리를 깨달은 자로 전도하지 아니하고 게으르게 산다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을 명심하여야한다.

2013년 8월 11일 일요일

새벽만나 8월9일 본문 롬8

오늘 은혜받은 구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내가 하는 생각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있다. 하나는 사망의 생각이요. 하나는 생명의 생각이다. 생명에 속한 생각이 평안을 주는 것이라면 사망에 속한 생각은 당연히 불안과 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순간적으로 화가나서, 섭섭해서 하는 생각들은 대부분은 사망에 속한 생각들이다.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나의 생각들을 이 두가지로 분류하여 봐야겠다. 그리하면 사망에 속한 생각이 들었다가도 거기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너무나 많은 위로를 주는 말씀이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 정말 무의미하게 아니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같이 생각되는 사건들도 하나님의 손에서 그 것이 다뤄질 때는 의미있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내게 꼭 필요한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말이다. 정말 힘들지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8: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이다. 답답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앞에 붙잡고 때써보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100만불을 그냥 준 사람이 그 불쌍한 자가 10불이 필요하다고 구한다면 안주겠는가우리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얻을려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값진 것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그 사랑은 어찌보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 죄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보다 더 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이요, 믿기힘든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무엇으로 그 것을 갚을 수 있단 말인가내가 죽는다고 그 것이 갚아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식을 출가시킨 부모들이 "너희들 잘사는 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냥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으로 소금으로 그렇게 잘사는 것이 그 하나님의 사랑에 최고로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면서까지 우리에게 원했던 것은 우리의 좌절과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위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주지않을 이유가 없으신 것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가?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새벽만나 8월8일 본문 롬6-7

오늘 은혜받은 구절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나의 옛사람은 예수와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십자가는 예수님과 함께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나도 함께 죽은 곳이다.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과 함께 죽은 나의 옛사람을 바라보자.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몸이라 할지라도 성화를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야한다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하게 살아야하는 것은 구원받은 우리가 끝까지 행하여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2013년 8월 8일 목요일

새벽만나 8월7일 본문 로마서4-5

오늘 은혜받은 구절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나님은 나와 화평하기 원하셔서 그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통속에 죽기까지 당장이라도 아들을 살릴수있는 전능하신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고통을 참으며 보고만 계셨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댓가로 이루어진 화평의 길이건만 나는 왜 그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지 못하는 적이 많은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며 선물인지 더 자주 , 더 깊이 묵상을 하여야 하겠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내가 아직 주님을 알기도 전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죽게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금 믿음에 설수가 있다나아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도 그를 보며 저사람때문에 예수님이 죽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그사람의  모습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떠 올리자.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수 있다면 아무리 미운 사람도 이세상에서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13년 8월 6일 화요일

새벽만나 8월6일 본문 로마서1-3

오늘 은혜받은 구절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 자신은 “ 1,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2,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3.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입었다고 그의 정체성을 확실히 말하고있다. 예수를 믿은 후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과 똑 같이 종이라 고백하기에는 나자신이 너무 부끄럽지만 적어도 나는 예수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이세상에서 거룩한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않고 드러내며 살도록 택함을 받은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바울 당시의 유대인처럼 지금도 성경말씀, 설교 듣는것만 좋아하며 귀만 거룩하여진 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식만 늘어나 자기가 아는 것이 마치 자기의 믿음의 크기인양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 나역시 그런점에서 온전할 수는 없다. 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 결국 죽어가는 루게릭병같이 하나님의 잭망과 경고의 말씀앞에 점점 반응이 없어지는 영적 루게릭병에는 절대 걸려서는 안되겠다.     

2013년 8월 3일 토요일

새벽만나 8월3일 본문 삼하 21-24

오늘 은혜받은 구절

22: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다윗은 자기의 삶을 뒤돌아보며 인생의 여러가지 순간마다 자기를 지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특히, 전쟁터에서 적군에 에워싸여 싸울 때나 성벽을 넘어가야 할 때 자신의 경험과 군사들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를 둘러쌓고 있는 헤쳐나가야 할 지금의 모든 힘든 상황과 뛰어넘어 극복해야 할 높은 성벽과도 같은 장애물을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넘어가자.

23:3-4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다윗은 험란한 삶속에서도 자신의 나라가 끝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사람을 공의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의 축복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결국 넘어지고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회개하며 나아가는 자를 축복하신다. 돋는 해 아침 빛같은 힘찬 축복의 삶을 살기를 소망하며 사람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의와 사랑을 베풀자.

2013년 8월 2일 금요일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어느 과학자의 고백)

미국의 유명한 한 과학자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10가지 이유를 설명했는데 논리적인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동전 10개를 보이지 않는 주머니에 넣고 흔든 후 꺼낼 때, 순서대로 1부터 10가지 계속해서 나올 확률은 100억분의 1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연이 그렇게 될수가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세한 확률이 우리가 살고있는 자연과 우주에는 너무나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① 지구의 돌아가는 속도는 항상 일정합니다.
지구는 시간당 1,600㎞로 돌고 있습니다. 이런 지구가 만약 갑자기 이상해져서 한 시간당 160㎞로 돈다면 모든 사람들은 낮에는 타 죽고 밤에는 얼어 죽을 것입니다.

② 지구와 태양과의 떨어진 거리가 신비스럽게도 아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③ 지구가 23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4계절이 나타납니다.만약 지구가 기울어있지 않고 수평이라면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게 되어 대양 증발 수증기로 남북은 얼음 덩어리로 되어 있을 겁니다.

④ 지구와 달이 80,000㎞라는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는 하루에 두 번씩 물에 잠기는 일이 없습니다.

⑤ 지구의 두께가 3m만 더 두꺼웠으면 산소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동식물은 존재할 수 없을 겁니다.

⑥ 대기권의 두께가 지금보다 얇았더라면 지구는 별똥들에 의해서 날마다 불바다가 된다고 합니다.

⑦ 연어의 행로입니다. 연어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바다에서 태어나 강물로 올라갑니다.

⑧ 장어의 행로입니다. 장어가 바닷가에서 알을 낳고 죽으면 새끼들은 다시 호수나 강으로 돌아옵니다. 아메리카 뱀장어가 유럽에서 잡힌 일이 없고유럽 뱀장어가 아메리카에서 잡힌 일이 없답니다.

⑨ 호주의 선인장이 빠른 속도로 번식되는 것을 억제 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인장만 갉아 먹고 사는 곤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⑩ 사람은 폐를 가지고 있으며,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관은 성장을 억제시킵니다만약 곤충도 폐를 가지고 있다면사람만큼 성장할텐데다행스럽게도 곤충은 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우주와 자연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어디 이것 뿐이겠습니까 자연과 우주를 아니 만물을 더 크게, 더 멀리, 더 깊숙이, 더 철저하게, 더 연구분석해 본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우연이니 진화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비과학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1:7), 지혜의 근본(9:10)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12개 갖고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창조주요 심판주되심을 믿지않으면 실상은 지식의 가장 근본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인 것입니다.

새벽만나 8/02/13 본문 삼하 19-20

오늘 은혜 받은 구절

19: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다윗을 죽이려던 압살롬의 반역군을 진압하던 요압은 결국 압살롬을 죽이고 돌아온다. 그러나 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만을 통곡하며 왕으로서 분별력을 잃어버림으로 그를위해 생명을 걸고 싸웠던 신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그러나  요압의 뼈있는 충고의 말은 다윗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고 국정을 살피게하였다. 리더는 사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분별력과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것이다.   

2013 호피 인디안 단기선교 동영상




지난 2013년 7월 4일~7일까지 있었던 새로남교회 
아리조나 2nd Mesa 호피인디안 단기선교 동영상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2013년 8월 1일 목요일

새벽만나 8/01/13 본문 삼하 15-18

오늘 은혜 받은 구절

15:19-21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날 어찌 너로 우리와 함께 유리하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난을 가야하는 다윗에게는 자기를 위해 싸워줄 한사람이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자기의 적대국이였던 가드 사람 잇대에게 그 수하의 600명과 함께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기만을 생각지않는 다윗의 이러한 아량과 진정으로 부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결국 그들로하여금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거는 충성된 사람들이 되게 만들었다진정한 리더십은 역경의 순간에 다른 사람을 배려함으로 자신을 떠날 수 있는 사람조차도 충성된 동역자로 만들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