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혜받은 구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내가 하는 생각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있다. 하나는 사망의 생각이요. 하나는 생명의 생각이다. 생명에 속한 생각이 평안을 주는 것이라면 사망에 속한 생각은 당연히 불안과 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순간적으로 화가나서, 섭섭해서 하는 생각들은 대부분은
사망에 속한 생각들이다.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나의 생각들을 이 두가지로 분류하여 봐야겠다. 그리하면 사망에 속한 생각이 들었다가도 거기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너무나 많은 위로를 주는 말씀이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 정말 무의미하게 아니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같이 생각되는 사건들도 하나님의 손에서 그 것이 다뤄질 때는 의미있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내게 꼭 필요한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말이다. 정말
힘들지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씀이다.
8: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이다. 답답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앞에 붙잡고 때써보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100만불을 그냥 준 사람이 그 불쌍한 자가 10불이 필요하다고 구한다면 안주겠는가? 우리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얻을려는 것보다 더 가치있고 값진 것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 그 사랑은 어찌보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 죄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보다 더 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이요, 믿기힘든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무엇으로 그 것을 갚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죽는다고 그 것이 갚아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식을 출가시킨 부모들이 "너희들 잘사는 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냥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으로 소금으로 그렇게 잘사는 것이 그 하나님의 사랑에 최고로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면서까지 우리에게 원했던 것은 우리의 좌절과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시기위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주지않을 이유가 없으신 것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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