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혜받은 말씀
12: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네들의 과중한 짐을 덜어달라고 요구하는 소리를 듣고 솔로몬을 모셨던 원로들을
불러 자문을 구하는데 그 원로들은 왕이 백성의종이 되어 백성을 섬기면 백성은 왕을 끝까지 따를 것이라는 지혜로운 충고를 하지만 결국 거절하고 만다. 섬김을 받으려하는 자는 도리어 섬기는 자가 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공한 리더는 겸손히 섬기는 사람인 것이다. 섬김은 종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고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종이 주인을 높게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보다 자기 백성,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더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리더에게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진정 따르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참된 리더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리더로부터 존중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행동하는 사람이며 그것이 끝까지 충성된 사람을 자기곁에 둘 수있는 비결일 것이다.
12: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백성의 요구와 원로들의 조언을 듣지 아니하고 포악한 정치를 하는 르호보암의 행위는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잃고 유다왕국 분열의 계기가
되어진다. 어떤 단체나 국가,
교회의 분열도 따져보면 지도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좋든 싫든 얻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만은 내 주위의 사람을 떠나게하는 패망의 선봉인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의 교만한 행동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한 섭리가운데 벌어지는 일이라는 성경의 말씀이다. 난 솔직히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의 절대적인 권위앞에 두려운 마음이 든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한 뜻이기를
기도하며 삼가 긴장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나아가 내가 이해 할 수없고 때로는 분노마저 느끼게하는 어떤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과 황당한 사건을 만나게 될 때에는 그런 하나님의 섭리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안에 일어났던 분노와 미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같기도 하다. 받아들이기 힘든
그러한 상황을 연출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면 내가 더이상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12: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여로보암의 공격에 맞서 르호보암은 온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모아 여로보암과 전쟁을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스마야에게 하나님은 르호보암에게 형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을 듣고 전쟁을 포기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칫 형제간의 큰 살육이 날뻔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그의 뜻을
선포하게 하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구속함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요 제사장이 된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다 온전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믿음과 성숙함에 개인의
차이가 많이 있는가? 딤후3:16-17절의 말씀과 같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지혜를 주신다.
그 지혜는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부족한 나를 더욱 온전케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여로보암이 그가 자기 맘대로 세운 단에서 분향할 때에 그런 여로보암의 악행으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의 예표를 선포하기 위해 올라간 하나님의 사람(선지자)의 말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위에 쏟아 지자 화가 난 여로보암이 선자자를 잡으라고
소리치며 손을 내밀자 여로보암의 손은 그대로 말라 굳어져 버렸다. 그러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기를 고쳐달라고 사정을 한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던 자가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에게
자기의 문제를 해결 해 주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그 능력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 하나님을 믿는 나의 삶을 통해 내가 믿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삶을 살음으로
저들이 해결 못하는 문제를 만났을 때 나를 불러 기도를 부탁하는 그런 삶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일 것이다.
13: 20-22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순종하여 여로보암 왕앞에 목숨을 걸고 축복이아닌 저주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손이 마른 왕의 손도 기도함으로 고쳐줌으로서 엄청난 재물로 환대하고자 하는 왕의 후의마저 거절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물 한모금
조차 얻어 먹지 않겠다고 하고 돌아가는 그런 충성되고 강직한 믿음의 선지자를 어찌하여 나이가 먹은 늙은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 운운하며
속임수를 써서 결국 그로 하여금 떡과 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만들고 그 일로 하나님은 그 늙은 선지자를 통하여
그 충성된 선지자가 죽을 것을 예언하며 노상에서 그대로 죽게 한 사건이다. 이전에도 이 부분은 정말 이해가 잘 안되는 대목이었다. 오늘은 읽으며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감사하게도 성령님은 오늘 두가지 새로운 깨달음을 내게
주셨다. 첫째는 사람의 신분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고 네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가를 생각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하신 잠언의 말씀처럼 지혜때문에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늙은 선지자가
자기도 같은 선지자라 하며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다는 말에 충성된 선지자는 속아 넘어간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을 바꾸어 다시 말씀하지 않았는데도 선지자라는 신분에 그의 말을 덮석 믿어 버리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실수라 생각이 되지만 그 댓가는 너무나 처절한 것이었다. 요즘 부끄럽지만
목사나 장로, 교회 성도의 신분을 이용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너무 많지만 그것이 설령 좋은 마음의
위로와 충고라 할지라도 내게 주신 말씀이 있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앞에 순종은 적당한 순종이 아닌 철저한 순종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만하면 되었지가 아니다. 어찌보면 도가 지나친 것 같이
보일지라도 철저한 순종을 원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며 편리함 때문에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끝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도들의 연약함에 맞추어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하다고 칭찬해 줄지언정 힘들어도 거기서
더 해야 된다고 말하는 지도자를 보기 힘든 세상아닌가? 그렇게 말하려면 자신 또한 그런 충성된 자가 되야하겠지만 자신도 그렇게 못하기에 그런 말을 당당히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적당히 순종하는 자에게 우리는 연약하기에 그런 당신을 나는 이해 할 수있지만 그래도 당신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거기서 만족하고 머물면 안된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도 중심을 보시기에 이해 하실거라며 성도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머물게하는 착각을 갖도록 만드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 결과는 충성된
자를 죽이는 결과를 야기한 늙은 선지자와 다를 바가 없지 아니한가? 말씀 가운 데 지혜롭게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